마녀배달부 키키는 1989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개봉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작품이죠.
열세 살, 혼자서 낯선 도시로 떠난다는 것, 빗자루 하나와 검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떠나는 낭만을 담아낸 수작입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감동을 안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상을 마친 팬들에게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왜 키키는 고양이 지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됐을까요?
오늘은 지브리의 장편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을 추천하며 지지가 말을 못하게 된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마녀배달부 키키 – 이야기의 배경과 줄거리

사진 출처 (asiae)
마녀배달부 키키는 마녀 어머니와 인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 키키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마녀 전통에 따르면, 열세 살이 되는 보름달 밤 마녀 없는 마을을 찾아 1년간 홀로 수행해야 어엿한 마녀가 될 수 있습니다.
키키는 짝꿍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바다를 건너 대도시 코리코 마을에 정착합니다.
마녀를 본 적 없는 도시 사람들은 호기심 반, 무관심 반의 눈빛을 보냈고, 키키는 처음부터 적잖이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빵집 주인 오소노 아주머니의 친절로 다락방에 얹혀 살게 되었죠.
이후 자신의 유일한 마법인 비행 능력을 살려 하늘을 나는 택배 사업을 시작합니다.
배달을 거듭하며 하늘을 좋아하는 소년 톰보, 자유분방한 화가 우르슬라와 인연을 맺고 조금씩 도시에 자리를 잡아갑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마법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지지의 말이 들리지 않게 되고, 빗자루마저 부러지고 말죠.
마녀배달부 키키 고양이 지지는 어떤 존재인가

사진 출처 (reddit)
지지는 단순한 반려묘가 아닙니다.
다른 동물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하고, 그 내용을 키키에게 통역해주는 역할을 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설정상 나이는 키키와 같은 열세 살, 사람으로 치면 일흔 살에 가까운 어른의 연령대이기도 하죠.
마녀배달부 키키 고양이 지지는 키키의 능력 중 ‘비행’과 함께, 그녀가 마녀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두 축 중의 하나입니다.
재치 있는 말투와 엉뚱한 반응으로 영화 내내 유머를 담당하지만, 언제나 키키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보호자이기도 합니다.
처음 배달에 나서다 고양이 인형을 잃었을 때, 지지가 직접 인형 역할을 자처한 장면으로 그의 책임감을 보여주기도 했죠.
고양이가 말을 못하게 된 이유

사진 출처 (reddit)
영화 후반부, 키키는 기분이 상해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이상함을 느낍니다.
지지가 “야옹”이라고만 울고, 말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된 것이죠.
당황한 키키가 빗자루를 타보자 마법도 흔들리고, 연습 도중 빗자루마저 부러져 버립니다.
원작 소설에는 이러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즉, 미야자키 감독이 애니메이션화 과정에서 직접 추가한 설정이라는 것이죠.
감독은 이에 대해 직접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키키의 마법은 한결 깊어졌어요. 뭔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요. 언제까지나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아이가 소녀가 되었다는 성장의 의미
지지와 말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은 마법이 퇴보한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키키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섰다는 신호에 가깝죠.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고양이와 말이 통합니다.
동화 속 언어, 상상의 세계, 아직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그 시절의 감각 말이죠.
그러나 세상의 무게를 느끼고, 자신의 쓸모를 의심하고, 좌절 앞에서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키키는 그 세계에서 한 발짝 멀어집니다.
어른이 되는 것은 무언가를 얻는 만큼 무언가를 잃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대가 중 하나가 바로, 고양이와 대화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슬럼프를 넘기는 법 – 우르슬라와의 하룻밤

사진 출처 (cine21)
마법도 잃고 배달도 멈춘 키키에게 찾아온 것은 화가 우르슬라였습니다.
숲속 오두막에서 함께 밤을 보내며 키키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날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날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우르슬라는 이렇게 답합니다.
“마법하고 그림은 비슷해. 나도 안 그려질 때가 종종 있어. 그럴 땐 미친 듯이 그릴 수밖에 없어.”
이 대화는 이 작품이 안겨주는 메시지 중의 하나입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것, 잘하던 일이 갑자기 되지 않는 것은 비단 키키의 일 뿐만이 아닙니다.
우르슬라는 그 막막함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그것이 오히려 키키에게 위로를 안겨줍니다.
슬럼프는 나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 잠깐 멈추는 시간인 것이죠.
마법을 되찾는 순간 – 위기 속에서 피어난 의지

사진 출처 (hitchwill의 브런치)
우르슬라의 오두막에서 마음을 추스른 키키는 코리코 마을로 돌아옵니다.
그 직후 비행선 스고가 폭주하며 톰보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키키는 거리의 청소부 할아버지에게 빗자루를 빌립니다.
묵은 자루 냄새가 나는, 아무렇게나 묶인 그 낡은 빗자루를 타고 키키는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마법을 어떻게 되찾은 것인지 설명은 없습니다.
그 순간 키키에게는 기술이나 확신이 아닌, 단 하나, 톰보를 구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을 뿐이었죠.
결국 키키는 톰보를 구하는 데 성공하고, 코리코 마을의 진짜 일원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키키는 부모님께 편지를 씁니다.
마을에 친구도 생겼고, 나는 법도 다시 알게 됐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잘 지내고 있다고.
다시는 말을 하지 않게 된 지지

사진 출처 (watcha)
마법을 되찾은 뒤에도 지지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습니다.
북미 더빙판에서는 지지가 마지막에 “키키, 내 말 들려?”라고 말하는 장면이 추가됐지만, 원작 일본어판에는 그런 장면이 없습니다.
관객들이 지지의 말이 끝내 돌아왔는지 아닌지를 두고 오랫동안 갑론을박을 이어왔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결말을 열린 채로 남겨 뒀습니다.
원작 소설의 후속 이야기에 따르면 키키는 결국 지지와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적어도 영화 속 열세 살 키키에게, 지지의 목소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더 솔직한 어른이 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되찾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전하는 진실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글을 마치며
영상 출처 (kkakkadan)
지브리 영화 추천 목록에 이 작품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후반부의 스펙터클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집을 박차고 나와 낯선 곳에 뿌리 내리려 했던 모든 경험과 맞닿아 있습니다.
처음 취직한 날의 어색함, 새 도시에서 혼자 밥을 먹던 밤, 잘하던 일이 갑자기 손에서 미끄러지던 그 당혹감.
키키의 이야기는 마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회 초년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단지 귀여운 마녀의 모험담이 아닌, 지금 어딘가에서 혼자 버텨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되는 것이죠.
여러분도 오늘밤, 키키에게 힘들었던 청년 시절의 위로를 받아 보시길 바랍니다.








